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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눈에 띈 것은 오키나와 노트 때와는 다른 오에 겐자부로의 태도다. 오키나와 노트 때 지나치게 감상적인 본토인으로서의 사죄 의식을 낱낱이 전시했다면 히로시마 노트에서는 어딘지 정제되고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히로시마는 본토의 영역이고 본토인으로서 어느 정도 오히려 고통과 책임을 나누는 과정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지 않아서 가능했지 않을까 싶다.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상 수상자이든 말든 뛰어난 휴머니스트이든 말든 '일본인 리버럴'이라고 밖에 느낄 수 없는 불편한 지점 (히로시마의 피해자로서의 일본이 자연스럽게 전쟁의 피해자로서의 일본으로 이어지는 세계관) 들이 종종 있었고 이 불편한 지점들을 불편해 하는 것이 '조선인 내셔널리즘'을 내재화한 나 자신의 한계라 느꼈다. 


사실 애초에 오에 겐자부로를 읽지 않으면 될 일이다. 정치적인 세계를 오에 겐자부로의 문장들로 독해하기에는 어딘지 나이브하다. 그럼에도 내가 오에 겐자부로를 읽었고 앞으로도 읽을 이유는 오에 겐자부로가 히로시마 생존자들이 선택한 자살을 숭고한 신념으로 지나치게 부풀리더라도 자살을 선택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 또한 끝까지 응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피폭피해자들의 선이 원폭이라는 짓을 저지른 사람들의 악보다 우월하다는 증거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